2년 전 대기업 S사 부장으로 퇴직한 정희수 씨(51·가명). 그는 퇴직금과 대출금을 합한 3억원 자금으로 인천 부평에 고기 전문점을 차렸다. 처음엔 장사가 잘됐지만 주변에 우후죽순 고깃집이 생기고 경기가 어려워 점차 손님이 뜸해졌다. 급기야 수지가 맞지 않아 벌어놓은 돈까지 까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 재산을 투자한 사업인 만큼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은행대출은 물론이고 각종 신용대출까지 마구잡이로 끌어다 쓰면서 가게 홍보에 나섰다. 생각만큼 매출이 회복되지 않자 ‘돌려막기’로 빚을 갚으면서 결국 사채에까지 손을 댔다.

이러기를 2년 하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급기야 소유하던 아파트까지 팔고 부인과도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정 씨는 퇴직하기 전까지만 해도 월수입 600만원에 99㎡(30평)형대 아파트에 사는 ‘어엿한’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제2의 인생’으로 시작한 사업이 여의치 않자 급기야 서민층으로 전락했다. 할 수 없이 사업을 접은 그는 새로운 창업은 꿈도 못 꾼다. 동네 생활정보지만 뒤적이며 일자리를 구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월 100만원짜리 일자리도 찾기 어려워 어렵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기 시작했다.

정 씨처럼 월급쟁이들의 종착역(?)인 자영업까지 경기 한파로 얼어붙으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3년 연속 감소해 최근 600만명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올 상반기 자영업자 수는 594만5000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7만2000명이나 감소했다. 2003년 ‘카드 대란’ 당시 자영업에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쳤을 때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무리한 주택담보대출 이자도 부담

중산층 붕괴 사례는 또 있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던 송필주 씨(45·가명)는 지난 몇 년간 강남 집값 급등으로 배가 아팠다. 2003년 상계동 66㎡(20평)대 아파트를 살 때만 해도 굳이 주택을 투자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갈수록 치솟는 강남 집값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급기야 그는 2005년 말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아이들도 마침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교육이 중요해진 터라 강남 입성에 본격 나선 것. 큰 맘 먹고 대출 5억원을 받아 대출금과 아파트 매각자금을 더해 서초구 99㎡ 아파트를 구입했다.

하지만 송 씨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변동금리형 대출금리가 8%까지 뛰면서 이자만 매달 몇백만원씩 내다 보니 등골이 휠 지경이다. 송 씨는 “강남에 입성할 때만 해도 어엿한 중산층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요즘은 아예 저축도 못하고 있다”며 “힘겹게 대출이자만 갚다 보니 어느새 서민으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힌다.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시대가 오면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산 투자자들이 힘겨워하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대출이자 부담이 날로 커지면서 재테크는 아예 포기하는 중산층이 늘고 있다.

지방 거주자의 소외감은 더 크다. 광주 풍암지구에 거주하는 김종희 씨(55·가명)는 최근 고민 끝에 서울 입성을 포기했다. 그는 대기업 D사를 퇴직하고 지난해 초부터 시가 6억원 상당의 원룸빌딩을 지어 임대하고 있다. 처음엔 임대수익이 짭짤했지만 최근 주위에 원룸빌딩이 너무 많이 생겨 차츰 빈 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빌딩을 팔아 서울 부동산에 투자하려 했지만 강남·북, 수도권 할 것 없이 집값이 온통 오른 탓에 살 집 한 채 구하기도 여의치 않다. 빚 2억원을 갚고 나면 정작 내집 마련 외엔 투자할 여윳돈이 없다.

김 씨는 “그나마 광주에서는 원룸임대 사업을 한다고 하면 돈 꽤나 있는 중산층으로 알아줬고 매달 200만원가량 임대수익도 얻었다”며 “하지만 서울에 가면 집 한 채 딸랑 있는 서민으로 전락할 것 같아 벌써부터 겁이 난다”고 밝힌다.

[김경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73호(08.09.17/24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